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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들은 화장실을 길로 썼다, 감천문화마을 화장실이 레드닷을 받은 이유

감천문화마을 화장실 설계안 투시도, 골목 사이로 나뉜 화장실 동과 지붕 쉼터

감천문화마을 화장실에서는 소변기 앞에 서 있으면 등 뒤로 사람이 지나간다. 이상한 일이다. 그런데 부산 감천문화마을에서는 일상이었다. 높낮이가 다른 두 골목을 길이 잇지 못해, 반대편으로 가려면 한참을 돌아야 했다. 주민들은 돌지 않았다. 화장실 안을 그냥 가로질렀다. 이 풍경을 고치지 않고 설계로 옮긴 안, 공식 작품명 ‘감천문화마을 쉼터 화장실’이 2026 레드닷 디자인 어워드 디자인 콘셉트 부문에서 ‘Best of the Best’를 받았다.

감천문화마을 화장실, 공모전에서 레드닷까지

출발은 2025년이다. 부산시와 부산디자인진흥원이 ‘부산 우수공공디자인 국제공모전: 지명공모’를 열었다. 해외 디자이너 2팀, 부산 디자이너 2팀이 참여했다. 최종 선정은 엠오씨 건축사사무소. 심사위원 만장일치였다. 이후 부산디자인진흥원의 권유로 레드닷 디자인 콘셉트에 출품했고, 결과는 Best of the Best였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이 설계안은 레드닷 최고상인 ‘Luminary’ 후보에도 올랐다. 최종 결과는 10월 싱가포르 시상식에서 나온다. 엠오씨는 신주영·황현혜 건축사가 2018년 부산에서 세운 사무소다. 한눈에 정리하면 이렇다.

항목내용
작품명감천문화마을 쉼터 화장실
설계엠오씨 건축사사무소 (신주영·황현혜)
출발2025 부산 우수공공디자인 국제공모전: 지명공모 (부산시·부산디자인진흥원)
수상2026 레드닷 디자인 어워드 디자인 콘셉트 부문 Best of the Best
후보최고상 Luminary, 10월 싱가포르 시상식에서 발표
현재 상태미건립 계획안 (9월 인터뷰 기준 건립 협의 없음)

화장실을 쪼개자 골목이 생겼다

감천문화마을은 1950년대 태극도 신앙촌 신도들과 6·25 피난민들이 모여 살며 산비탈에 층층이 들어선 마을이다. 누가 도로를 그어준 적이 없다. 사람이 다니는 자리가 곧 길이 됐고, 그래서 끝이 막힌 길과 집 사이로 빠져나가는 좁은 틈이 뒤섞여 있다. 신주영·황현혜 대표는 디자인프레스 인터뷰에서 화장실을 관통하는 주민들을 보고 “디자이너로서 가진 상식이 무너지는 순간”이었다고 말했다. 이상한 풍경이 아니라 거주민의 지혜로 읽었다는 것이다.

보통의 답은 정반대다. 비좁고 경사진 땅에 화장실을 한 덩어리로 앉히려면 땅을 깎거나 메워야 한다. 옹벽이 생긴다. 옹벽은 주민이 만든 지름길을 막는다. 엠오씨는 이것을 마을이 오래 쌓아온 지혜를 거스르는 일로 봤다.

그래서 감천문화마을 화장실은 쪼개졌다. 남자·여자·장애인 화장실을 세 개의 작은 동으로 분리하고, 높이 차가 약 1.2m인 땅의 생김새에 맞춰 하나씩 자리를 잡았다. 동과 동 사이의 틈은 앞 도로에서 뒷골목으로 빠지는 통로가 됐다. 길은 꺾여 있다. 밖에서 화장실 안이 곧바로 보이지 않고, 골목으로 바람과 빛이 든다. 화장실 위로는 가벼운 지붕과 마루를 올려, 산동네까지 올라온 관광객과 동네 주민이 함께 앉아 쉬는 자리를 만들었다. 화장실, 지름길, 쉼터. 세 가지를 한 부지에 겹쳤다.

재료도 마을에서 가져왔다. 외벽은 주민들에게 익숙한 모자이크 타일이다. 경사지붕에는 마을 곳곳에 덧댄 렉산(투명 플라스틱) 지붕에서 착안한 반투명 마감을 썼다. 규모는 주변 건물을 넘지 않도록 제한했다. 새것이되 튀지 않게, 이것이 기준이었다.

감천문화마을 화장실은 아직 지어지지 않았다

짚고 가야 할 사실이 있다. 이 화장실은 아직 없다. 수상 부문 자체가 ‘디자인 콘셉트’다. 9월 디자인프레스 인터뷰 기준으로, 엠오씨는 지자체와 구체적인 건립 협의가 진행된 상태는 아니라고 밝혔다. 기존 화장실의 노후화가 심각해 개선 기회가 올 것으로 기대한다는 말을 덧붙였다.

그래서 설계자가 못 박은 원칙이 중요하다. 예산이나 사정에 따라 마감재는 바뀔 수 있다. 그러나 화장실을 잘게 나누고 그 틈을 골목으로 엮은 공간의 구조만큼은 지키고 싶다고 했다. 필자가 보기에 이 원칙이 이 설계의 전부다. 공사비를 줄이자며 덩어리를 하나로 합치는 순간, 감천문화마을 화장실은 평범한 공중화장실로 돌아간다.

실무자가 가져갈 것, 관찰이 설계보다 먼저다

이 설계안에서 배울 것은 화려한 형태가 아니다. 관찰이다. 사용자가 시설을 ‘잘못’ 쓰고 있을 때, 디자이너는 보통 그 행동을 막는 쪽으로 설계한다. 출입을 통제하고 동선을 바로잡는다. 엠오씨는 반대로 갔다. 잘못된 사용이 아니라 충족되지 않은 필요로 읽었다. 서비스디자인에서 말하는 ‘우회 행동(workaround)’을, 도시계획에서 말하는 ‘욕망선(desire path)’을 문제 정의의 출발점으로 삼은 셈이다. 행동이 먼저고 형태는 나중이라는 이야기는 행동을 디자인한다? 노먼도어와 어포던스에서도 다뤘다.

반대의 경우를 떠올려 보면 차이가 선명하다. 새 시설이 들어서자 원래 있던 지름길이 사라지고, 주민은 다시 먼 길을 돈다. 도면 위에서는 깔끔하다. 현장에서는 불편하다. 엠오씨는 인터뷰에서 앞집이 뒷집의 햇빛을 가리지 않는다는 마을의 암묵적인 규칙까지 들여다봤다고 말했다. 그 정도의 관찰이 있어야 새 건물이 마을의 일부가 된다. 디머스가 제주에서 진행한 현장에서 답을 찾다, 인터뷰 및 서비스사파리 역시 같은 전제에서 출발했다.

현장 조사에서 바로 써먹을 질문은 세 가지로 줄일 수 있다. 사람들이 원래 다니던 길은 어디인가. 새 시설은 그 길을 끊는가, 잇는가. 사용자의 ‘이상한 행동’은 규칙 위반인가, 설계가 놓친 필요인가. 질문을 미리 정리하는 방법은 인터뷰에 앞서서 준비한 것 2가지에 적어 두었다. 이 세 질문에 답하지 못한 채 도면부터 그리면, 결과물은 깔끔하고 쓸모없어진다.

장애인 화장실도 남녀 화장실과 똑같이 하나의 작은 동으로 나눈 점도 눈여겨볼 대목이다. 필자가 보기에 누구나 같은 골목에서 드나드는 배치는 유니버설디자인이 지향하는 방향과 맞닿아 있다. 공공시설을 주민과 함께 다시 설계한 과정은 제주 유니버설디자인 도민참여단 성과공유회 2026 : 3개월의 여정에서 볼 수 있다.

레드닷의 심사평은 확인되지 않는다. 설계자 스스로도 작은 삶의 기억에 녹아든 디자인이 공감을 얻은 것 같다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그래도 필자의 판단은 분명하다. 감천문화마을 화장실의 핵심은 형태가 아니라 주민의 발길을 설계 도면보다 먼저 믿은 태도다. 10월 Luminary 결과가 어떻든, 이 설계안이 남긴 질문은 같다. 우리 동네 공공시설은 주민이 만든 길을 지우고 있지 않은가.

자주 묻는 질문 (FAQ)

감천문화마을 화장실은 지금 가서 볼 수 있나요?

아직 볼 수 없습니다. 레드닷을 받은 것은 디자인 콘셉트 부문의 설계안이며, 2026년 9월 인터뷰 기준으로 지자체와 구체적인 건립 협의는 진행되지 않았습니다.

레드닷 Best of the Best와 Luminary는 무엇이 다른가요?

Best of the Best는 해당 부문에서 뛰어난 작품에 주는 상이고, Luminary는 레드닷의 최고상입니다. 이 설계안은 Best of the Best를 받았고 Luminary 후보에 올랐으며, 결과는 2026년 10월 싱가포르 시상식에서 발표됩니다.

이 설계안은 어떤 공모전에서 시작됐나요?

2025년 부산시와 부산디자인진흥원이 연 부산 우수공공디자인 국제공모전 지명공모에서 시작됐습니다. 해외 2팀과 부산 2팀이 참여했고, 엠오씨 건축사사무소가 심사위원 만장일치로 선정됐습니다.

화장실을 여러 동으로 나눈 이유는 무엇인가요?

경사진 부지에 한 덩어리로 지으면 옹벽이 생겨 주민들이 화장실을 가로질러 다니던 지름길이 막히기 때문입니다. 남자·여자·장애인 화장실을 작은 동으로 나누고 그 사이를 앞 도로와 뒷골목을 잇는 통로로 만들었습니다.

출처: 디자인프레스 「세계 디자인 어워드가 선택한 부산 감천문화마을 화장실」(조재이 기자, 2026.9.15) · 건축사신문 인터뷰(2026.7.13) · 사하구청 감천문화마을 소개 · 자료 제공 엠오씨 건축사사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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