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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학도의 창업에 빠져있는 한가지

공학도의 창업에 빠져있는 한가지

테이블에 의자는 네 개였는데, 앉은 사람은 한 명이었어요. 숭실대학교 진로탐색 프로젝트의 첫 멘토링 날. 제가 맡은 팀은 건축공학과 2학년 네 명인데, 그날은 팀장 혼자 나왔습니다. 조금 아쉬웠지만, 덕분에 두 시간 동안 아주 밀도 있는 일대일 대화가 됐어요.

학생의 계획은 이미 구체적이었습니다

이 팀, 준비를 안 해온 게 아니에요. 오히려 반대였습니다. BIM 관련 공모전을 찾아놨고, AI 코딩 도구와 블렌더 MCP를 연결해서 3D 모델을 만들겠다는 기술 스택까지 정해 왔더라고요. 그게 안 되면 도시 데이터 API로 학술 연구를 하겠다는 플랜 B도 있었습니다. 2학년이 이 정도면 솔직히 기특하죠.

그런데 설명을 쭉 듣다 보니 한 가지가 계속 걸렸어요. 모델, 도구, 공모전, 기술. 이야기에 사람이 한 번도 등장하지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BIM이 뭐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제일 기본적인 질문부터 던졌습니다. BIM이 뭐라고 생각하는지요. 학생은 “건물의 현황과 구조를 한눈에 보고, 관리를 효율적으로 하기 위한 것”이라고 답했어요. 맞는 말이죠. 그래서 한 번 더 물었습니다. “그 관리는 왜 하는 걸까요?”

누군가는 안전 때문에 관리를 합니다. 누군가는 에너지 효율 때문에 하고요. 같은 BIM인데 초점을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완전히 다른 프로젝트가 돼요. 학생 팀은 커리큘럼이 건축 에너지 쪽이라 에너지를 생각하고 있었는데, 저는 여기서 한 가지를 더 물었습니다. “에너지라고 하면, 사람들이 ‘아 맞아, 그거 문제지’ 하고 확 끌려올까요?”

발표든 공모전이든 창업이든, 결국 듣는 사람의 공감을 먼저 끌어와야 하거든요. 최근 산업 현장 화재 사고들처럼 사람들이 이미 체감하는 문제에서 출발하면 “건물의 안전관리 시스템이 정말 중요하구나”라는 공감이 바로 생깁니다. 모든 걸 다 관리하는 종합 시스템은 멋져 보이지만, 뾰족한 하나가 없으면 매력이 없어요.

기술을 먼저 만들면 생기는 일

개발이나 기술 쪽에서 제일 힘들어하는 게 뭔 줄 아세요? 기술은 만들었는데, 이걸 누구한테 팔지 모르는 상황이에요. 만든 사람에게는 혁신적이고 대단한 결과물인데, 시장에 내놓으면 아무도 필요로 하지 않는 것. 저는 이 장면을 정말 많이 봤습니다.

그래서 실제 사례 두 개를 들려줬어요. 하나는 아파트 일조량을 시뮬레이션해주는 어느 엔지니어링 회사의 AI 이야기. 이 도구의 시작점은 기술이 아니라 “저층이 안 팔린다, 빛이 안 든다”는 소비자의 불만이었습니다. 또 하나는 자동차를 정말 좋아하던 어느 대학생 이야기. 급발진 사고에서 소비자가 책임을 입증할 방법이 없다는 문제의식 하나로 차량 데이터 기록 모듈을 만들었고, 그게 창업으로 이어졌죠. 둘 다 순서가 같아요. 사람의 문제가 먼저, 기술은 그다음.

그래서 학생에게 부탁했습니다. 공모전이라는 결과를 먼저 상상하고 거기에 아이디어를 끼워 맞추지 말자고요. 대신 내가 진짜 좋아하는 것, 나를 분노하게 하는 불편에서 출발해보자고 했어요. 떡볶이집에서 “내가 만들어도 이것보단 낫겠는데?” 싶은 그 순간 있잖아요. 창업 아이템은 거기서 시작됩니다. 축구를 좋아하면 경기장 설계로, 가족 중에 아픈 사람이 있으면 병원 공간으로 — BIM은 어디에든 붙일 수 있으니까요.

그리고 빈 의자 세 개

이날 대화가 잘 풀릴수록 마음에 걸린 건 나오지 못한 세 명이었어요. 오늘 나눈 방향 전환이 팀 전체에 제대로 전달되지 않으면, 남은 팀원들 입장에서는 “왜 갑자기 이렇게 됐대?”가 됩니다. 그 순간 동기부여가 꺾이고, 팀 작업은 어긋나기 시작해요.

그래서 이날은 주제를 확정하지 않고 멈췄습니다. 대신 숙제를 하나씩 안고 헤어졌어요. 다음 시간까지 팀원 각자가 자기 관심사와 “해결하고 싶은 불편”을 하나씩 가져오기. 그걸 다 꺼내놓고 공통 관심사를 찾은 다음, 포스트잇을 붙여가며 아이데이션하는 디자인씽킹 워크숍을 해보기로 했습니다. 네 명이 모두 모여서요.

기술은 나중에 얼마든지 붙일 수 있어요. 하지만 “우리가 왜 이걸 만드는가”는 팀이 함께 정해야 하는 것이더라고요. 첫 멘토링에서 제가 한 일은 결국 그 순서를 바로잡은 것, 그게 전부입니다. 다음 시간에 네 명이 어떤 관심사를 들고 올지, 저도 꽤 기대하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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