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UD도민참여단 학생들과 함께 제주 현장조사를 다녀왔습니다. 장소는 삼다수숲길과 수월봉, 두 곳이었어요. UD도민참여단은 제주의 여러 장소를 유니버설 디자인 관점에서 다시 들여다보는 활동인데요, 오늘의 목표는 하나였습니다. 회의실에서 세웠던 가설을, 두 발로 직접 확인해보는 것. 자료로만 보던 이용자를 실제로 만나고, 그 사람들이 걷고 머무는 방식을 눈으로 관찰하는 하루였습니다. 화면 속 데이터로는 절대 잡히지 않는 표정, 걸음 속도, 잠깐 멈춰서는 지점 같은 것들이요.
2코스를 걷는 사람은, 1코스를 걷는 사람과 달랐습니다

삼다수숲길은 3개 코스로 나뉘어 있는데요, 오늘은 그중 2코스와 1코스를 직접 걸으며 탐방객들을 관찰하고 인터뷰했습니다. 걷다 보니 재미있는 게 보이더라고요. 2코스를 찾는 사람은 대부분 도민이었습니다. 혼자 온 사람보다는 가족이나 친목 모임끼리 삼삼오오 온 분들이 많았고, 이미 탐방 경험이 많은 분들이었습니다. 나무 이름을 서로 알려주거나 다음엔 어디로 갈지 자연스럽게 이야기하는 모습에서, 이 길이 이분들에게 이미 익숙한 산책로라는 게 느껴졌어요.
학생들은 삼나무 숲 사이사이에서 탐방객을 붙잡고 짧은 인터뷰를 진행했습니다. 처음엔 다들 조금 낯설어하다가도, 질문이 구체적일수록 편하게 이야기를 풀어주셨어요. 그렇게 모은 이야기들이 하나둘 겹치기 시작하니, 패턴이 눈에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인터뷰해보니 큰 불편은 없었어요. 다만 두 가지 요구가 계속 반복됐습니다. 쉼터에 지붕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것, 화장실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것. 실제로 2코스 쉼터의 피크닉 테이블에는 지붕이 없었습니다.

마침 도민 그룹 한 팀이 그 그늘 없는 테이블에서 식사를 하고 계셨어요. 말로 듣기도 전에, 눈앞에서 이미 확인된 셈이었습니다. 뜨거운 볕 아래서도 다들 익숙하게 자리를 잡고 계셨는데, 그 익숙함이 오히려 마음에 걸렸어요. 불편을 참는 게 아니라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다는 뜻이었으니까요.
학생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결론이 자연스럽게 하나로 모였습니다. 처음 탐방하는 관광객에게는 1코스를, 반복해서 찾는 도민과 경험자에게는 2코스를 추천하면 좋겠다는 거였어요. 지금까지는 같은 안내판, 같은 동선으로 두 집단을 한꺼번에 설득하려고 했는데, 어쩌면 그게 처음부터 무리였는지도 모릅니다. 처음 온 사람에게 필요한 정보와 열 번째로 온 사람에게 필요한 정보는 다를 수밖에 없거든요. 코스를 사용자별로 나눠 안내하는 서비스로 만들면, 이 문제는 자연스럽게 풀릴 것 같았어요. 예를 들어 입구 안내판에 QR코드를 두고, 처음 방문인지 재방문인지에 따라 다른 추천 동선을 보여주는 식으로도 시작해볼 수 있겠다는 이야기까지 나왔습니다.
수월봉 퍼소나는 회의실이 아니라 현장에서 정해졌습니다

수월봉은 삼다수숲길과는 완전히 다른 풍경이었어요. 가족 단위 방문객과 외국인 관광객이 눈에 띄게 많았고, 국적도 정말 다양했습니다. 짧은 시간 안에 서너 개 언어가 오가는 걸 들었으니, 확실히 다른 사용자 집단이라는 걸 실감할 수 있었어요. 삼다수숲길에서 만난 사람들과 비교하면 체류 시간도 짧고, 처음 이 장소를 접하는 분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불편 사항은 크게 세 가지로 정리됐습니다.
- 주차 — 차를 세울 곳이 마땅치 않아 갓길에 대거나 한참을 돌아야 했다는 의견
- 안내판 — 지형과 역사에 대한 설명이 부족해, 외국인 방문객은 눈앞의 절벽이 무엇인지조차 알기 어려웠다는 의견
- 낙석 통제 구간 — 원래 동선을 다 걷지 못하고 중간에 되돌아와야 했다는 의견
사소해 보일 수 있지만, 처음 방문한 외국인 가족 입장에서는 하나하나가 다 장벽이었을 거예요. 차를 세우는 것부터 막막했다면, 그다음 설명도 통행도 순탄하게 느껴지기 어려웠을 테니까요.
사실 UD도민참여단 수월봉팀은 그동안 퍼소나를 좀처럼 정하지 못하고 있었거든요. 도민 위주로 볼지, 관광객 위주로 볼지, 그 안에서도 연령대를 어디에 맞출지 몇 주째 결론이 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오늘 현장에 나가보고 나서, 그 고민이 한 번에 풀렸습니다. 눈앞에 보이는 사람들이 답을 알려준 거예요. 중심 퍼소나는 가족 단위 외국인 관광객으로 확정됐고,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유니버설 디자인을 풀어가야 할지도 훨씬 또렷해졌어요. 언어 장벽을 낮추는 다국어 안내, 아이와 노약자를 함께 배려한 동선, 짧은 체류 시간 안에도 안전하게 즐길 수 있는 정보 설계 — 이런 구체적인 방향들이 회의 대신 현장에서 자연스럽게 나왔습니다.
답은 회의실이 아니라, 현장에 있었습니다
오늘 두 현장이 보여준 이야기는 결국 같았습니다. 사용자는 하나의 얼굴이 아니라는 것. 삼다수숲길에는 처음 온 관광객과 익숙한 도민이 따로 있었고, 수월봉에서는 몇 주째 못 정하던 퍼소나가 현장에 나가자마자 눈앞에 드러났어요. 유니버설 디자인은 책상 위에서 완성되지 않더라고요. 역시, 현장이 답을 줍니다.
오늘 만난 사람들, 오늘 걸은 길이 앞으로 두 팀의 방향을 상당 부분 정해줬습니다. 다음 단계는 오늘 확인한 페르소나와 문제들을 서비스 아이디어로 옮기는 일이에요. 삼다수숲길은 코스별 맞춤 안내를, 수월봉은 가족 단위 외국인 관광객을 위한 유니버설 디자인 솔루션을 구체화할 차례입니다.
돌이켜보면 오늘 하루가 특별했던 이유는 거창한 발견이 있어서가 아니었어요. 오히려 반대였습니다. 지붕 없는 쉼터, 붐비는 주차장, 부족한 안내판 — 어느 것 하나 새롭거나 놀라운 문제는 아니었거든요. 다만 그 평범한 불편을 직접 목격하고 나니, 어느 자료보다 확실한 근거가 됐습니다. 두 팀이 다음 현장에서 어떤 답을 들고 올지, 계속 지켜보려고 합니다.